CES 2016 단상, "IoT는 이미 현실입니다."
“IoT는 미래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현실입니다.”
지난 1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6’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홍원표 삼성 SDS 사장의 선언이다. 홍 사장은 이어서 “IoT는 우리 일상에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플랫폼 개방성을 더욱 확대하고 산업 간 협력을 통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1)스마트 제품과 핵심부품, 2)플랫폼, 3)정보보안 솔루션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SDS 사장이 어째서 CES라는 초거대 박람회 기조연설자로 등장한 걸까. 그건 CES의 최대 스폰서가 삼성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글로벌 대기업이 아닌 거라. 하지만 각국 기자들이 고른 CES 2016 4대 키워드가 ‘IoT’, ‘중국’, ‘스마트카’, ‘VR’인 걸 보더라도 그 한창 요란한 “차이나 광풍” 호들갑은 절대 괜한 빈말이 아니니, 향후 기술 및 산업 주도권 약화 우려 또한 괜한 기우가 아니다. 이미 국가적 차원의 심각한 문제다. 이거 생각하면 후일 걱정에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CES는 가전제품 전시회?
해마다 이맘때 되면 온갖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1967년 뉴욕에서 시작해 라스베이거스와 시카고에서 번갈아 격년 열리다가 1998년 연 1회 라스베이거스 개최로 굳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제품 박람회다. CES 박람회를 통해 지금껏 첫선 보인 물건들은 비디오 레코더, 레이저디스크, 캠코더, CD 플레이어, DVD, HDTV, Xbox, 블루레이 등 모두 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역사적 가전제품들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가전업체들의 위상이 어째 좀 초라해졌다. 나이 먹어 더 이상 청춘물 주인공 노릇 못하게 된 퇴물 배우 같은 느낌마저 든다. CES는 흔히 ‘국제 소비자 가전제품 전시회’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제 흘러간 뽕짝 옛말 같은 느낌이다. 가전업체들의 빈 자리를 지금은 일단 자동차 회사들이 대신 채우고 있지만 그 또한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이제 그만 박람회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가전제품 전시회’란 말은 영 안 어울린다 싶은데?
행사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가전제품이 아니라 각종 탈것이다. 스마트카 전시장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고, 뜻밖에 “사람이 타는 드론”이 화제였다. 어, 이상한데?
드론의 핵심은 ‘무인’ 아닌가? “사람이 타는 드론”은, 헬리콥터잖아,, 날개가 4개 사방으로 뻗었다고 드론인 건 아니고, 그건 그냥 쿼드콥터. 탑승자가 직접 조종하지 않으니까 드론인 것도 아닌 까닭은, 해당 부문의 사실상 국제표준으로 통하는 미국 ‘연방항공청 FAA(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운송용 항공기는 드론의 범주에 포함하지 않는다”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어떤 용어의 뜻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인데 너무 쩨쩨하게 따지는 거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이런 건 본래 뜻을 정확히 말하고 그래야 개념이 제대로 정립된다. 그러니 “사람이 타는 드론”이라고 요란하던 그 물건은 ‘자율주행 쿼드콥터 프로토타입’이다. 이러한 ‘자율(Autonomous)’과 ‘무인(Unmanned)’의 개념 혼동은 요즘 여기저기서 참 흔한 일이긴 하나, 이런 거 자꾸 헷갈리고 그러면 감히 말하건대, 미래창조과학은 없다. 진짜로.
융합은 시시하다?
혹자들은 “아니, 명색이 CES인데 발명도 없고 혁신도 없고 융합만 있어? 그거 전부 다 이미 있던 기술 그냥 섞은 거 아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스마트카 V2X 기술은 말 나온 지 한참 옛날이고 자율주행도 예전부터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 자동주차는 이미 제품화까지 끝난 기술이고 HUD(Head-Up Display) 제품도 이미 흔하다. 그.러.나.
그런 불만은 산업공학적 무지일 뿐이다. 진짜 신기술을 소비자 가전제품에 그대로 박아 넣으면 위험성 때문에라도 못 쓴다. 지금 기준으로도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다. 의약품 개발 및 허가 절차 수준의 안정성 검증이 필수다. 그러니 이런 데서 말하는 ‘프로토타입’은 ‘제품 출시 전 일단 무조건 멋지게 만들어 본 컨셉 모형’이 아니라 ‘아직 소비자 앞에 내놓을 준비가 덜 된 물건’의 뜻으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미 다 있던 기술 그냥 섞기만 한 거, 맞다. ‘CES 2016’ 전체를 관통하는 추상적 키워드 딱 하나만 고르라면 ‘융합’이다. 그리고 그 융합의 바탕은 행사 기조연설이 선언했듯 이미 현실이 된 IoT다. 경계가 사라진 또는 흐릿해진 이종 산업 간의 뒤섞임이 다시 전 산업분야로 영역을 확장해 전체 판을 크게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얼핏 보기엔 “왜 이런 게 가전제품 전시회에 나왔지?” 싶은 것들이 대다수라 주객이 전도된 듯싶기도 하지만, 그 애매해 보이는 것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전’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IoT로 대동단결!
그러니 결국 데이터 허브 주도권 쟁탈전이다. 집 안에서는 냉장고와 TV, 그리고 벽면 부착형 센서 등 다양한 장치들이 소위 ‘스마트홈’의 중심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자동차회사들은 이미 예전에 “이제 우리는 IT 회사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데이터 센터”임을 선언했다. 그 결과 치열한 혼전 양상이 계속되어 무지 어지러운데, 시각을 달리해 관찰해 보면 뜻밖에 아주 간단한 판이다. 그러니까 눈을 어지럽히는 온갖 물건들을 빼고 그 핵심이 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위 기조연설로 돌아가 보자. “1)스마트 제품과 핵심부품, 2)플랫폼, 3)정보보안 솔루션”. 그렇다. 이 일견 완전한 혼돈 상태로 보이는 어지러움도 결국 위 세 가지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본격 IoT 시대가 도래하면 세상 모든 물건에 1)의 적용이 필요하니 수요와 공급 대세도 이에 집중될 것이고, 그것들이 모두 2)를 통해 연결되니 역으로 2)가 1을 결정하게 되는데, 3)이 없으면 1)이든 2)든 뭐든 모든 게 싹 다 와르르 무너진다. 그런데 그 쟁탈전 각 판의 승자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이 ‘가전제품 전시회’가 이토록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이고 행사 이름마저도 어색하게 들리는 것.
전투가 끝나고 승패가 어느 정도 결정되면, CES는 머잖아 다시 이름에 어울리는 ‘소비자 가전제품 전시회’로 돌아가게 되리라 예상한다. 앞서 걱정했던 향후 기술 및 산업 주도권의 향방 또한 그 전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고.
IoT, “Information of Things”
어쩌면 혼동의 까닭은 ‘IoT’란 말을 곧이곧대로 “Internet of Things” 즉 ‘사물인터넷’으로 이해하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래 그 뜻이긴 하지만,, 해당 용어를 상징하는 대표적 장면이 “스마트폰으로 집에 있는 TV를 켜고 끌 수 있다” 식의 단순화는 확실히 문제다. 지나친 친절함이 본질을 감춘다.
그러니 요즘 일각에서는 개념 정립을 위해 ‘IoT’란 말을 “Information of Things”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물의 정보, 즉 세상 모든 것들의 정보가 거대한 웹망(Web Mesh)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개념으로 본다면 ‘CES 2016’도 “이것저것 많긴 한데 왠지 산만하기만 하고 뭔가 좀 이상해,,” 반응도 대폭 줄지 않을까 싶다. ‘Information of Things’ 개념은 보다 긴 말이 필요하다 싶어, 후일을 기약한다. 아무튼,
혼란 와중에 개념의 핵심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절이다.